728x90 전체 글323 남해 보리암 남해 보리암여행을 떠나자 멀리 남쪽으로~ 언젠가 방송에서 소개된 남해 보리암이 생각나 따뜻한 남쪽나라로 출발~남해에서 숙박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약360키로 거리를 휴게소에서 쉬며 쉬며 남해에 도착~숙소는 보리암에서 가까운 상주은모래비치 주변 콘도를 예약하여 가는길에 독일마을을 산책하고 설리 스카이워크와 숙소 주변 바닷가를 둘러보는것으로 첫날 여행을 마침.독일마을 입구월요일이라서 한가한 독일마을 설리 스카이워크설리 스카이워크~ 아침일찍 일어나 맑은날씨를 보며 감사기도~보리암으로 출발~평일이라서 2주차장을 통과하여 1주차장 까지 고~고~가파른 산길을 숨가쁘게 오르다 보니 1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가벼운 복장으로 포장된 도로를 오르다 보니 중간 산중턱에 이른다.보리암 오르는 길~보리암 가는길 산중.. 2023. 12. 20. 새방골 성당 새방골은 경신박해(1860년)를 전후하여 신자들이 살기 시작하였고, 병인박해가 끝난 뒤 더 큰 교우촌이 되었다. 경상도 순회 선교사였던 로베르 신부는 1888년 말 대국의 선교를 위해 신나무골에서 대구와 가까운 새방골로 거처를 옮겼다. 로베르 신부가 이곳에 은신해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옆집에 화재가 일어났는데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뀐 덕분에 저의 숙소와 성당이 있는 건물을 구하였습니다. 신자들은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것을‘신기하다고, 하늘이 이 집을 보호하신 것이 틀림없다.’고 합니다. 며칠 뒤 사람들이 우리 종교를 배우고 싶어한다고 찾아왔습니다. 저의 집의 일부는 불에 탔지만, 대신 미신.. 2023. 9. 15. 김천 황금 성당 『사학징의』에 따르면 1801년 박춘산이 ‘천주학’을 믿은 죄로 김산읍(김천의 옛 이름)에 유배되었으며, 같은 시기 부산 동래 출신인 한계탁도 형이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로 김산 고을 증산으로 유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여러 박해 시기를 거치면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 신자들이 김천 지역의 산골 마을로 숨어들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해서 마장, 먹방이, 장자터 등 여러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김천 지역은 이러한 박해를 피해 들어온 신자들의 교우촌일 뿐만 아니라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김천 성당(현 김천 황금 본당)은 대구 성당(현 계산 주교좌 성당)과 가실 성당에 이어 대구대교구의 세 번째 본당으로 1901년에 설립된 뒤 경상도 북부 지역의 전교와 신앙의 중심지였다.. 2023. 9. 11.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경북 군위의 산골에 위치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생가는 그가 군위 초등학교를 거쳐 소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김 추기경의 집안은 충남 논산군 연산의 양반 가문으로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기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의 집안이다. 조부인 김 요안은 병인박해 때 연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옥중 순교하였고, 조모 강말손은 남편의 순교 뒤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갖은 고생에도 교우들의 뒷바라지를 하였다. 김 추기경의 부친 김영석은 경상도 사목을 담당했던 로베르 신부의 일을 돕기도 하였고, 모친인 서중하는 대구의 유명한 신자 집안인 달성서씨의 후손이었다. 로베르 신부의 중매로 김영석 요셉과 서중하 마르티나는 혼인을 하였고, 1922년 4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김 추기경은 1922.. 2023. 8. 28. 구룡공소 현재 용성 성당 관할의 구룡공소는 청도군 용성면의 경계에 위치한 구룡산(675m)정상 가까이에 있는 공소로,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릴 정도로 첩첩산중에 위치하고 있다. 살티의 김영제 베드로는 병인박해 때 간월에서 체포되어 풀려난 뒤 이곳 자인골 용성면 매남 3리(큰골)로 와서 3년간 살다가 다른 신자들과 함께 다시 언양의 안살티로 가서 살았다. 로베르 신부의 1887년 사목 보고서에 따르면, 이 공소에 60명의 신자가 있었다. 1921년에는 대구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가 로마 성모 대성당을 주보로 정한 뒤, 준본당으로 축성하고 미사를 봉헌하였다. 한국 전쟁 동안 신자들은 피난을 가지 않고 공소를 지켰는데, 1952년 10월 이영조 가밀로 회장을 중심으로 공소 예절을 거행하기 위해 신자들이 모여 있을.. 2023. 8. 27. 가실성당 1895년에 설립된 가실 성당은 대구 계산 성당에 이어 경상도 지방에서는 두 번째 성당이며, 경상도 북부지역과 충청도 일부 지역까지 교세를 맡아 관할하는 어머니 교회의 역할을 하였다. 성당의 주보 성인은 성모님의 어머니 안나 성녀이다. 현재의 성당과 사제관은 1923년에 완성되었고, 설계는 파리 외방 전교회 프와넬 신부가 하였다. 가실 성당의 건축 양식은 신로마네스크 양식이며, 당시 본당 신부였던 투르뇌 신부가망치로 벽돌을 한 장씩 두드려 가며 확인하였다고 한다. 6.25때 남한과 북한의 양측 군인들이 성당을 병원으로 사용하였으며,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는데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52년부터 북한 덕원에서 내려온 성 베네딕도수도회에서 맡아 사목을 하고 있다. 가실 성당에는 1924년 이.. 2023. 8. 26. 이전 1 2 3 4 ··· 54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