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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순교성지24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대정(정난주 묘) 대정(정난주 묘) - [백 열 번째] 정난주 마리아는 정약현(정약종과 정약용의 맏형)의 장녀로서, 15세의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던 황사영 알렉시오의 부인이다.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남편 황사영은 조선 교회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고자 배론의 토굴에서 중국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백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백서는 주교에게 발송되기 전에 발각되었고, 이로 인해 황사영은 순교하게된다. 또한 그의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에, 부인 정난주는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로 귀양을 가게 된다. 정난주는 1801년 음력 11월 21일 두 살 난 아들 경한을 품어 안고 귀양길에 올랐으며, 추자도에 이르러 인적이 없는 해안가 갯바위에 아들을 내려놓고 생이별을 해야만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녀는 깊은.. 2022. 11. 5.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복자 김기량 순교현양비 복자 김기량 순교현양비 - [백 열한 번째]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 함덕리 출신으로 소규모 무역상이었다. 그는 1857년 초 제주 근해를 항해하다가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에 인도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조선 신학생 이만돌 바울리노에게 교리를 배운 뒤 1857년 5월 31일 제주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세례를 받고 귀국하였다. 그는 제주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예비 신자들의 세례를 위해 그들과 함께 육지에 자주 다녔는데, 여비 마련을 위해 거제도에 갔다가 체포되어 통영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는 장살형을 받아 수없이 많은 곤장을 맞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이듬해 1월에 51세의 나이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은데, 관헌들은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 2022. 11. 5.
축복장 받던날!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2015년 11월22일 대천해수욕장에 위치한 요나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하고, 성물방에서 노승준 세례자요한 주임신부님을 뵙게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성지순례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신부님께서 국내 순교성지에 대해서 말씀 하시면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행한 소책자를 가지고 순례중인지 말씀하셨다. 성모자상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 본당 성물방에는 소책자가 없어 분당 요한성당 성물방에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소책자를 구매하였다. 2015년 12월 5일 우리부부는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 위치한 천주교회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를 첫 스타트로 순례길에 올랐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 순간순간 주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힘든 순례길이 었지만 우리 선조 신앙인들의 .. 2022. 11. 5.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용수(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 용수(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 - [백 아홉 번째]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중국 상해항을 출발하여 서해 바닷길로 귀국하다가 표착한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17일 중국 상해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같은 해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 호’를 타고 귀국하던 중 큰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였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은 고국에서의 감격 어린 첫 미사를 용수리 해안에서 봉헌하고, 배를 수리한 후 이곳을 떠난 전라북도 금강 하류 나바위로 상륙하여 귀국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경기도 용인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가 1846년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해 .. 2018. 5. 13.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새미 은총의동산 새미 은총의 동산 - [백 여덟 번째] 1950년대 후반에 성 골룸반 외방선교회 소속 사제 패트릭 맥글린치(임피제) 신부는 한림 성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면서, 그 당시 가난한 제주 농민들을 돕기 위하여 외국의 원조를 얻어 한림읍 금악리에 넓은 목장을 확보하고 성 이시돌 농촌산업개발협회를 성립하였다. 그는 특히 축산업을 발전시켜 제주도뿐 아니라 한국의 목축업에 많은 기여를 했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여러 가지 종교사업과 사회사업을 펼쳤다. 이 장소의 옛 이름을 딴 ‘새미’(SAMI) 은총의 동산은 라틴어에서 거룩함, 영혼, 복음, 중개자, 하느님의 모습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예수님의 공생활 테마들과 십자가의 길 14처를 동상으로 제작하여 세워 놓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복음 테마공.. 2018. 5. 12.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복자 정찬문 묘 복자 정찬문 묘 - [백두 번째]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는 진주시 사봉면 출신으로 신자였던 아내의 권면으로 입교 영세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정찬문은 포졸에게 잡혀 진주감옥에 갇힌다. 여러 번 심한 문초와 고문을 받았지만 배교하지 않았다. 특히 그가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아기를 등에 업고 주먹밥을 나르던 부인 윤 씨의 격려는 그가 굴하지 않고 순교의 월계관을 쓰기까지 커다란 공헌을 했다. 결국 이듬해인 1867년 1월 25일, 순교자는 매를 많이 맞은 끝에 진주옥에서 참수 치명한다.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죽은 뒤 그의 일가들이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 왔는데 머리를 가져오지 못한 채 하체(下體)만 장사 지냈다고 한다. 어찌하여 머리를 가져오지 못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순교자의 무덤..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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