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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성지44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수리산성지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수리산성지 다시 찾아간 수리산 성지~ 2015년 12월5일 천진암성지를 출발한 국내순교성지순례는 2018년 5월3일 제주도 복자 김기량 순교현양비 순례를 마지막으로 약 2년 6개월에 걸쳐 순례를 마치고 2018년6월22일 전주 치명자산성지에서 김선태 주교님으로 부터 축복장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현직에 있으면서 주말을 이용한 성지순례길은 멀기만 하였는데 멀게만 느껴졌던 순례길이 아쉽게 끝나고, 2018년 12월31일 정년퇴직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성경필사를 시작하여 그나마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가고있다. 최근에 주교회의에서 111곳에서 누락된 성지등을 추가하여 59곳이 추가되고 3곳이 삭제된 전체 167곳의 국내순교성지 개정 증보판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소책자를 구매하여.. 2022. 11. 5.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황경한 묘 황경한 묘 - [백다섯 번째]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이곳 하추자도에 황사영의 아들 황경한의 묘소가 있다. 백서(帛書)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 알렉시오와 정난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황경한은 신유박해 때 백서 사건으로 부친 황사영이 순교한 후, 어머니 정난주가 제주도로 유배되는 과정에서 하추자도에 남겨지게 되었다. 하추자도에 남겨진 경한은 오씨(吳氏) 성을 가진 한 어부의 손에 거두어졌다. 경한이 추자도에 떨어졌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이름과 생년월일에 의해 그가 바로 황경한임을 알게 되었고 오씨의 아들로 키워졌다고 한다. 오씨의 집에서 장성한 경한은 혼인하여 두 아들.. 2018. 1. 25.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산정동 성당 산정동 성당 - [백네 번째] 전라남도 지역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병인박해를 피해 온 다른 지역의 교우들이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부터였다. 산정동 본당은 1897년 5월 8일 설립된 광주대교구 첫 번째 본당이며 또한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지로 1953년에 ‘치명자의 모후’와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설립되었다. 이 자리에 1988년 4월 5일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기념비가 세워졌고, 1998년 5월 23일 윤공희 대주교 집전으로 목포 선교 100주년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기념관에는 1953년 5월 31일 레지오 마리애 첫 주회부터 현재까지의 시대별 발전사, 초창기 때부터 사용되어 왔던 회의록 및 출석부, 세계 레지오 최초의 교본, 한국 최초의 .. 2018. 1. 21.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복자 구한선 묘 복자 구한선 묘 - [백세 번째] 복자 구한선 타대오는 함안군 대산면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언제 영세 입교했는지 알 수 없지만 피난 교우의 후손임이 분명하다. 구한선은 원래 함안 미나리골의 중인 계급 출신으로 신심이 돈독하고 믿음에 충실해 1866년 병인박해 직전에 리델 신부의 복사로 거제도까지 가서 전교 활동을 한 바 있다. 박해가 본격화 되자 리델 신부는 충청도로 떠나고 구한선은 전주에서 지내다 붙잡힌다. 그는 감옥에 갇혀 며칠 동안 혹독한 문초를 받다가 결국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포졸들은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순교자는 본가로 돌아온 뒤 칠일 만에 장독(杖毒)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나이 23세였다. 순교자의 무덤은 1959년 당시 함안 본당 신부였던 제찬규 신부의 노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2018. 1. 21.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복자 정찬문 묘 복자 정찬문 묘 - [백두 번째]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는 진주시 사봉면 출신으로 신자였던 아내의 권면으로 입교 영세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정찬문은 포졸에게 잡혀 진주감옥에 갇힌다. 여러 번 심한 문초와 고문을 받았지만 배교하지 않았다. 특히 그가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아기를 등에 업고 주먹밥을 나르던 부인 윤 씨의 격려는 그가 굴하지 않고 순교의 월계관을 쓰기까지 커다란 공헌을 했다. 결국 이듬해인 1867년 1월 25일, 순교자는 매를 많이 맞은 끝에 진주옥에서 참수 치명한다.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죽은 뒤 그의 일가들이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 왔는데 머리를 가져오지 못한 채 하체(下體)만 장사 지냈다고 한다. 어찌하여 머리를 가져오지 못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순교자의 무덤.. 2018. 1. 20.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복자 윤봉문 요셉성지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 - [백 한 번째] 복자 윤봉문 요셉의 가족이 거제도에 정착한 것은 1868년경이다. 병인박해 중에 윤사우 스타니슬라오가 양산 ‘대처’를 거쳐 이곳 진목성에 와 전교 활동을 폄으로써 활발하게 포교 활동이 이루어진다. 윤봉문은 윤사우의 둘째 아들로 거제의 사도로서 형경문과 함께 교회 회장직을 맡아 신자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에 힘쓰는 한편 자신의 수계에도 열심이었다. 1888년 2월7일 옥포에서 체포된 윤봉문은 거제 부사 박병용의 호출을 받고 거제 관아로 끌려가 태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포졸들은 배교시키려고 심한 문초와 고문은 가했지만 순교자는 믿음으로 견디다 진주로 옮겨져 교살(絞殺)당해 순교하였다. 순교자의 가족으로는 부인 진(診) 펠리치타스와 아들 학송 루카(당시 7세).. 2018.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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