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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여행4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복자성당 복자 성당 - [여든 두 번째] 복자 성당에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의 묘소가 있다 세 분 순교자는 원래 박해를 피하여 언양 죽령리 공소 지역에 살다가, 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여 경주 산내면 단석산 벌굴로 숨어 살았으나 포졸들에게 붙잡혀 갖은 문초와 극심한 옥고를 치르고 울산 장대벌에서 1868년 순교 하였다. 경주 진목정 뒷산인 도매산에 매장되었는데, 1932년 대구 감천리 교회 묘지로 이장했던 것을 복자 성당 건립 정신에 따라서 1973년 10월 19일에 이곳으로 옮겨모셨다. 세분 순교자는 ‘하느님의 종’ 으로 선정된데 이어 ‘하는님의 종’ 으로 선덩된 데에 이어 절차에 따라 시복하였다. 묘소 뒤쪽에 보이는 성당은 병인순교 100주년 성당으로서 시복 시성 운.. 2017. 7. 9.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 성거산 성지 성거산 성지 - [쉰다섯번 째] 이곳 성거산 성지 주변은 박해때 신앙의 선조들과 순교자들이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삶의 터전인 교우촌 7개가 산재되어 있어 선조들의 신앙의 향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교우촌 가운데 목천 서덜골 교우촌은 뮈텔 주교가 배티까지 사목방문을 갈 때 거쳐 가는 경로였고,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백부 최영렬과 셋째 아우 최선정 안드레아가 잠시 성장한 곳이며 최양업 신부가 드나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소학골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 때 니콜라 칼레 신부(강신부), 페롱 신부, 뮈텔 주교 등이 숨어 지내며 암암리에 사목활동을 하던 곳이다. 병인박해의 목천 순교사를 보면 이곳 주위에 산재된 교우촌에서 순교자들을 23명이나 배출하였다. 또한 소학골 교.. 2016. 11. 2.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쉰두 번째]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오늘도 그를 본받아 이 땅의 참된 목자가 되려는 신학도들의 모든 삶에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효시는 18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교사들은 정하상을 비롯한 소년들에게 국내에서 신학 교육을 시키는 한편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을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는데 그중 김대건과 최양업만이 사제품을 받고 귀국해 활동하다가 순교했던 것이다. 그 후 1855년 배론에 성요셉 신학당이 세워져 신학 교육을 시작했으나 1866년 병인박해로 폐쇄되었고 1885년 강원도 여주군 강천면 범골(부엉골)에서 현 가톨릭 신학대학의 직접적인 .. 2016. 8. 21.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 광희문 광희문 [쉰한 번째] 광희문은 서울 성곽의 사소문(홍화문, 광희문, 소덕문, 창의문으로 사대문 사이에 세웠던 문을 말함.)중에 동남 방향에 있는 성문으로 장충단에서 한강 사이에 남소문(南小門)이 없어진 뒤 북쪽의 수구문(水口門)을 일컬어 광희문이라고 불렀다. 본래 수구문은 서소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체를 성 밖으로 운반해 내던 곳으로 송장 또는 시체의 문이라는 뜻에서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렀다. 서울과 수원, 용인 등 인근 지역의 교우들이 도성 안으로 끌려 들어왔고 가혹한 고문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치명의 길을 가야 했다. 도성 안에서 참수 치명한 순교자들의 시신은 짐짝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이곳에 내다 버려졌으니 실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었다. 살아서 이 문.. 2016.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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