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가톨릭성지순례6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계산 주교좌성당 계산 주교좌성당 - [일흔아홉 번째] 계산 성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신나무골에서 사목하던 김보록 신부가 대구 본당을 설정하고 1899년에 한옥 성당을 봉헌했는데, 이것이 곧 현재의 계산 주교좌성당의 전신이다. 그 뒤 이 한옥 성당은 화재로 소실되고 1903년에 현재의 고딕식 성당 건물이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됐는데 1911년에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면서 종탑을 높였고 그 뒤에도 몇 차례의 부분적인 보수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교좌성당답게 신자들의 활동도 두드러졌는데 신학문 교육기관인 성립학교의 여자부는 대구지역 여성 교육의 요람이 되었으며 후에 효성보통학교로 승격되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초등교육기관으로 성장했고, 1909년에는 가톨릭청년회의 효시인 성립학우회가, 1912년에.. 2017. 7. 8.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 여우목 여우목 - [일흔세 번째] 여우목 성지는 103위 성인인 이윤일 요한 성인과 서치보 요셉 가정에 의하여 이루어진 교우촌으로 부근에 ‘건학’과 ‘부럭이(부락이)’라는 교우촌이 있어 빈번한 접촉을 하면서 지냈다. 소백산맥이 높고 험준한 대미산을 경계로 하여 충북 단양과 경계를 이루는 문경 지방의 최동북단에 위치한 여우목은 옛날부터 경상도 동쪽 지방의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서 이곳을 거쳐 문경 읍내와 새재로 넘어갔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1839년 기해박해 무렵에 충청도 홍주가 고향인 성 이윤일 요한 가정이 상주 갈골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그 무렵에 경상도 초대 교우 서광수의 손자인 서치보 요셉의 가정이 충북 청원에서 이곳으로 피난해 오면서 신자들이 살기 시작했다. 서치보 요셉(1791-1840년)은 .. 2017. 5. 12.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 청양다락골 청양다락골-[예순한 번째] 다락골의 천주교 전파는 신해박해(1791년)를 피해 서울에 살던 최인주(최양업 신부의 조부)와 그의 모친(내포의 사도 이존창 누이)이 고향인 이곳에 피신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최양업 토마스(1821년)신부와 그의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1805년) 성인이 탄생하게 된다. 또한 기해박해(1839년)때, 모방 나 신부와 샤스탕 정 신부가 마지막으로 피신해 숨어 지내며 천주교를 전파하다, 앵베르 범 주교님의 편지를 받고 홍성 관아에 자진 자수함으로써 조선 교회 교우들을 위해 착한 목자로서 순교를 받아들인 곳이다. 그 결과 그동안 경주 최씨의 집성촌이었던 이곳은 거룩한 천주교인들의 교우촌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병인박해(1866년)때, 이 교우촌이 발각되어 잡혀간 교우들.. 2017. 1. 1.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 반주골(이승훈 묘) 반주골(이승훈 묘) - [쉰네 번째] 이승훈은 1756년 태어나 24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단념하고, 마재 정씨 가문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결혼하여 그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당대의 석학 이벽과도 교분을 갖게 된 그는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된다. 영세 후 이벽, 정약전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1785년에는 서울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 집회를 갖는 등 신자 공동체를 형성시켜 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명례방 집회가 형조의 관헌에게 적발되는 을사 추조 적발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천주교 서적을 불태우고 벽이문(闢異文)을 지어 첫 번째 배교를 한다. 1786년 다시 교회로 돌아왔으나 그 후에도.. 2016. 8. 28.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 서소문 순교성지 서소문 순교성지 [쉰세 번째] 서소문 성지는 조선시대 공식 사형 집행장으로, 사직단 서쪽에 처형장을 두어야 한다는 ‘예기’의 가르침과 최종 사형 판결을 내리는 형조나 의금부와 그리 멀지 않다는 편의성,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칠패시장’이 있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조선시대 대부분의 처형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 이래 이 처형장에서 순교하신 분은 신원이 확인된 분만도 1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44위가 시성되었는데 단일 순교지로는 성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정하상 바오로와 김효임 골룸바, 김효주 아녜스 성인 등이 있다. 또한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시복하셨다. 서소문에서 .. 2016. 8. 21. 한국천주교 성지순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쉰두 번째]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오늘도 그를 본받아 이 땅의 참된 목자가 되려는 신학도들의 모든 삶에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효시는 18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교사들은 정하상을 비롯한 소년들에게 국내에서 신학 교육을 시키는 한편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을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는데 그중 김대건과 최양업만이 사제품을 받고 귀국해 활동하다가 순교했던 것이다. 그 후 1855년 배론에 성요셉 신학당이 세워져 신학 교육을 시작했으나 1866년 병인박해로 폐쇄되었고 1885년 강원도 여주군 강천면 범골(부엉골)에서 현 가톨릭 신학대학의 직접적인 .. 2016. 8. 21. 이전 1 다음 728x90